Sunday, October 23, 2016

안토니 반 레벤후크

안토니 반 레벤후크

안토니 반 레벤후크
안토니 반 레벤후크

안토니 반 레벤후크



안토니 반 레벤후크
안토니 반 레벤후크

안토니 반 레벤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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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의 세계를 열었던 레벤후크 
(Antony van Leeuwenhoek, 1632-1723)

    과학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이 과학에서 근본이 되는 발견과 과학의 새로운 분야를 시작하고, 인간 역사의 과정을 바꾸는 일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또한 비전문가가 새로운 기준이 될 과학기술을 보여주는 것 역시 종종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안토니 반 레벤후크(Antony van Leeuwenhoek)는 그러한 사람이었다. 레벤후크는 매우 창의적이었고, 주의깊었으며, 정확하고, 그 당시의 잘못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으며, 채울수 없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 호기심은 그가 40세부터 91세로 죽는 날까지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 호기심은 그가 로버트 후크(Robert Hooke)의 벌레, 코르크, 직물과 20-30배의 배율로 관찰된 다른 물질들의 그림을 포함한 새 삽화집인 ‘마이크로그라피아(Micrographia)’의 사본을 읽었을 때 시작되었다. 레벤후크는 자신의 렌즈를 연마하여 만들고, 그 자신만의 현미경을 만들었다. 기술상의 완벽함은 그 배율을 200배 이상으로 끌어올렸고, 그는 인류에게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세계인 미생물의 세계(world of microorganisms)를 열었던 것이다.

네덜란드의 델프트(Delft)에서 태어난 안토니에게는 과학자가 될만한 어떠한 조건이나 기회가 전혀 없었다. 대신에 그는 어려움과 역경을 먼저 알게 되었다. 바구니 제조업자 였던 그의 아버지는 그가 대여섯살 때쯤 세상을 떠났다. 그의 어머니는 맥주 양조업자의 딸이었다. 그녀는 화가이자 지방행정관(bailiff)이었던 사람과 재혼했으나, 안토니의 새아버지는 그가 16살때 다시 세상을 떠났다. 삼촌이 그의 교육을 담당했고, 대학교육은 결코 받아본 적이 없었으며, 그 당시의 과학교육에 사용되던 언어인 라틴어 교육도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고, 그의 모국어인 네덜란드어가 그가 아는 유일한 언어였다. 레벤후크는 16살이 되던 해 직물상의 견습생 일을 시작해서, 22살이 되기 전 직물점의 상인이 되었다. 그는 그 당시 비단 상인의 딸이었던 바바라 드메이(Barbara de Mey)와 결혼했다. 그리고 5명의 아이를 가졌는데, 그 중에 네 명은 어릴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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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n.wikipedia.org/wiki/Antonie_van_Leeuwenho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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